건축학
실험적인 고층 주택 계획
popcorngirl
2021. 4. 25. 21:54
이렇게 되자 정부에서는 연방 주택법을 제정해 대도시의 여러 병리 현상을 고쳐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세인트루이스도 미국의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였다. 인구는 줄어들었지만 밀려 들어오면서 슬럼이 확대되었고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시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도심과 외곽 지역의 재개발에 주력했다. 슬럼을 사들여 그곳의 건물을 완전히 쓸어버린 후 민간업자에게 되파는 사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시에서는 이런 땅들을 주로 상업 용도나 중산층을 위한 주거지로 사용하려 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주택 건설도 이와 유사한 방법을 사용했다. 프루이트-가 고 단지도 그렇게 건설된 공공주택이었다.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의 면적은 57에이커였다. 1950년 시에서는 5,800호의 공공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자금을 연방정부로부터 지원받았는데, 이 자금의 절반을 프루이트-이고 단지의 건설에 투입했다. 시에서는 이곳에 있던 쓸 럼을 완전히 쓸어버렸고, 그 자리에 총 2,700호의 주택에 1만 5,000명의 인구를 수용하는 단지를 건설했다. 수용 인구는 원래 이곳에 거주한 인구보다 많은 수치였다. 당국에서는 계획을 담당할 건축가로 레인 웨버 · 야마사키 · 헬무스합동사무소 Leinweber, Tamasaks Hellimuth Inc. 를 선정했다. 이 단지를 설계한 건축가가 미노우 야마사키 Minors Yama saki 라고 알려진 것은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런데 당시 건축가들은 시의 주택국에서 이미 정해 놓은 각종 지표를 그대로 준수해야 했다. 대지 규모는 물론이고, 계획 세대수, 호수 밀도 등에도 변경의 여지는 없었다. 건축가들이 처음 수립한 계획은 저층, 중층, 고층이 적절히 섞인 안이었다. 그런 나 계획안대로 시행하면 연방정부에서 정한 가구당 공사비를 초과했다. 연방 공공 주택국 Public Housing Administration, PHA에서 파견된 감독관은 11층 높이의 널빤지꼴형 주동이라는 일률적인 건축계획을 강요했다. 도판 1950년대 초반 연방정부의 공공주택에 대한 정책적 기조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전쟁의 발발로 자재 부족 현상에 봉착하자 공공 주택국은 이러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야마사키는 고층건축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야마사키가 주택이론가 캐서린 바꿔 Catherine Bauer와 벌인 논쟁에 의하면, 그가 고층건축을 수용한 이유는 슬럼 철거라는 사회적 불가피성과 제한된 땅에 고밀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고층건축이 공공주택의 형식으로 적절하냐는 물음에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당연히 저층, 저밀 주택이 고층 주택보다 더욱 유리하다. (...) 만약 경제적 사회적 제약이 없었다면 모든 문제를 1층 건물로 해결했을 것이다.” 6 1949년에 당선한 세인트루이스 시장 조지프 다스트 Joseph Darst는 대규모 개발을 선호하는 개발론자였다. 특히 뉴욕을 다녀온 이후에는 고층 건축을 매우 선호했고, 연방 주택국이 정한 고층 주택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설계사무소를 처음 시작한 야마사키로서는 실험적인 고층 주택 계획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들은 고층 주택의 거주성 향상을 위해서 3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와 유리창으로 외부와 격리된 폐쇄형의 편복도를 중요한 계획요소로 채택했다. 편복도는 엘리베이터 운행과 연계 해서 3층 단위로 설치되었다. 엘리베이터는 1층, 4층, 7층, 10층에서 운행되었고 사람들은 여기서 복도와 계단을 통해 각자의 주택으로 진입했다. 복도를 중심으로 '독립된 근린'을 창출하겠다는 의도였다. 복도를 이웃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보고 세탁실과 창고도 복도를 향해 개방되게 했다. 1950년대 초반 이 단지의 계획안이 여러 건축 잡지에 실렸을 때, 가장 주목받은 내용도 바로 복도였다. 『아키텍처를 레코드 Architectural Record」 집에서는 3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와 연계된 복도에 대해 “고층 주택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혁신적이 법주자 치”라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모든 주동을 고층화시킨 뒤에도 연방 공공 주택국에서는 건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계속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은 결국 프루이트-이고 단지가 실패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공공주택 정책의 실패를 연구한 유진 미안 Eugene J Meghan에 의하면, 우선 계획 과정에서 단지 내부의 각종 유희시설, 어린이 놀이터, 조경 시설, 공중목욕탕 등이 예산 절감의 이유로 사 단지가 준공된 이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철물의 질이 너무 낮아서 문손잡이와 자물쇠는 사용하자마자 부서졌고 입주 전에 이미 부서진 것도 많았다. 부실한 창틀 때문에 창유리는 바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날아간 것이 부지기수였다. 부엌의 선반은 가장 얇은 합판으로 만들었고, 열에 견디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지정된 계산대 표면은 일반 나무로 마감했고, 신 크는 너무 작았으며, 배기용 송풍기는 설치하지 않았고, 난로와 냉장고는 가장 작은 사이즈 로 그리고 가장 싸구려로 시공했다. 값싼 재료로 엉터리로 시공한 부분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이 을 만큼 많았다. 단지는 처음부터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