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
암스테르담 도시계획
popcorngirl
2021. 4. 26. 09:21
암스테르담시에서는 1962년 시의회에 새로운 주거단지의 건설계획을 제출했고, 이어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암스테르담 도시계획국의 간부였던 지크프리트 나스 Siegfried Nassuth 가 주 측이 되어 수립한 단지의 마스터플랜은 1965년에 완성되었다. 거대한 단지를 건설하는 데 오로지 시가 주축이 되었다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계획을 맡은 나 쉬스는 아테네 헌장'이 표방하는 계획이론에 열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시청 내부의 극히 폐쇄된 소집단 이외에는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일절 경청하지 않았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는 당연히 없었고, 공청회 한 번 거치지 않았다. 모든 결정권은 나 시스를 위시한 소수의 사람이 쥐고 있었고, 일부 에서 제기된 반대 의견이나 비판은 전혀 고려되지 6. 거대하고 단조로운 베일 메이르 메이르 단지의 전경. 않았다. 베일메르메이르 단지는 고층 주동 위주로 이루 어졌다. 주택의 90퍼센트는 11층 높이의 주동에 수용되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프리패브 공법으로 지었다. 주동의 1층에는 세탁실, 창고, 집회실 등 공용시설을 배치했는데, 대부분은 창고였다. 각 주택으로의 진입은 2층에서 이루어졌기 때 문에 2층이 모든 동선의 중심이다. 2층이 동선의 중심이 된 이유는 그곳에 공중가로가 설치되 어 이웃 주동 및 서비스 시설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도판 7 공중가로는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큰 특징 중 하나로 계획을 수립한 나쉬스 팀이 매우 강조한 개념이었다. 이 공중가로는 여러 개 의 주동을 이어 주며 주차장, 전철역, 학교, 근린센터로 연결된다. 나쉬스가 이런 통로를 사용한 것은 마을의 가로' 역할을 기대하며 영국의 스미스슨 부부가 제안한 공중가로의 개념을 번안 한 것이다. 고층아파트 주동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단지의 중앙에 넓게 자리하는 '벌집' 형의 거대 한 주동들이다. 한 변이 대략 100미터 길이의 정육각형을 이루면서 길게 이어지는 형상을 취한 다. 그렇다고 하나의 주동이 완전한 정육각형인 것은 아니고 선형의 주동들이 이리저리 집합된 결과 여러 개의 '벌집'을 만드는 형식이다. 이러한 벌집형 주동의 근원에는 팀 텐 그룹이 자리하 고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스미스슨 부부의 '골든 레인 주거단지' 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전체에는 31개의 '벌집'이 자리하고, 하나의 '벌집'에 포함된 주택 수는 평균 425호이다. '벌집'을 형성하 는 주동 중에서 가장 긴 것은 600미터로 830호의 주택을 수용한다. 도판 8 이 벌집형 주동의 2층 에도 주동과 주동을 연결하는 공중가로가 설치되었다. 계획을 수립할 당시 이곳에 입주할 주민 은 주로 암스테르담에서 이주해 온 중산층으로 설정했고, 자녀가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100-120제곱미터인 대형주택이 많았다. 베일메르메이르의 단지계획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세 가지다.16 첫째는 거대한 스케일이 다. 전체 면적의 80퍼센트를 점하는 광대한 오픈스페이스와 녹지, 그리고 거대한 주동들과 주 차용 건물들, 선형의 주동을 연결하는 긴 통로 등 모두 인간 적 스케일을 초월하는 공간들로 구성되었다. 둘째는 건물 과 공간의 획일성과 단조로움이다. 주동이나 주변의 공공시 설은 모두 단일한 패턴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졌으며, 사용된 부재들도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어 반복성, 규칙성, 표준화 등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공동 이용과 평등성이 극도로 강조된 점이다. 하나의 주동이 보통 400호가 넘는 주택을 수용하고 있는데, 몇 개 되지 않는 출입구와 홀이 이들을 서 비스하면서 주민들의 아이덴티티와 프라이버시는 무시되 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규모 주차용 건물, 주동을 연결하 는 통로, 광대한 오픈스페이스 등은 많은 주민들의 공동 이 용을 전제로 계획된 것이다. 단지는 1966년 12월에 착공되었고 이 년 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 이후 십 년 동안 공사를 밀어붙인 결과 1975년 7.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주동과 서비스 시설을 잇는 공중가로, 계획을 수립한 나쉬스 팀의 스케치이다.(위) 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그런데 입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8. '벌집'을 형성하는 베일메르메이르 단지의 긴 주동, 않아 이 야심찬 '미래도시'는 '혼란과 황폐의 마을'로 변하 스백 미터 길이로 이어지는 건물이 인상적이다. 2010년 (아래) 고 말았다. 당초에 목표로 했던 중산층은 이곳에 입주하지 않았다. 일부 입주했던 중산층도 탈출을 시작해 1970년대 중반까지 백인을 중심으로 17퍼센 트의 입주민이 단지를 떠났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갈 데가 없는 저소득층이었다. 1975년 에 네덜란드의 식민지 수리남Suriname이 독립한 것을 계기로 다수의 이민자들이 이곳에 밀려 들 어왔다. 1991년 1월, 거주자의 31.4퍼센트가 수리남 이민자들이었다.17 베일메르메이르 단지 는 프루이트-이고 단지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서 마약, 범죄, 불법점거, 파괴, 훼손 등 심 각한 사회문제가 급증했다. 상부층에서 쓰레기를 던져 버리는 일이 빈발할 정도로 공중질서에 대한 주민들의 의식 수준은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