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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새롭게 조성된 주거환경

기능보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합리성보다는 정서적 풍요로움에 중점을 두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사용자를 대하는 건축가들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결정하던 태도를 버리고 미래의 거주자가 그들 자신의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으로 계획의 방법을 바꾼 것이다. 획기적인 변화였다. 거주자는 자신이 만든 주거환경에 애착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소속되고, 그곳에 뿌리내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 되었다. 실존 현상학 Existential Phenomenology' 이 바탕에 깔린 인식의 변화였다. 이러한 변화는 재건축의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개발방식보다는 주민이 좋아하는 것은 남기고 없앨 것은 추려내면서 '이야기’가 풍부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사용자를 존중하는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언급할 사례들은 주거환경을 새롭게 접근했다는 측면에서 이십 세기 주거 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첫째, 랠프 러스킨이 계획한 영국의 '비커 재개발 주거단지’는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거지'를 표방하는 새로운 계획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적용했다. 둘째, 알 바로 시작가 설계한 포르투갈의 '말라 게이라 지구'는 근대건축의 언어와 지역의 전통적 언어를 교묘하게 접합시킨 특별한 주거지다. 셋째, 카르로 아이모니 노와 알도 고시가 설계한 밀라노의 '갈라라 태세 집합주택'은 역사와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시도한 '작품'이다. 세 프로젝트는 모두 역사성, 지역성, 공간적 특성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이와 더불어 리카르도 보필의 집합주택은 다소 다른 측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즉 역사적 유산을 어떻게 재현하는가의 방법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도판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비커 재개발 주거단지 '비커 재개발 주거단지 Baker Redevelopment Housing Estate, 1969-1982'는 영국 북부 공업 도시 뉴캐슬 어폰 타인 Newcastle upon Tyne에 자리한다. 도판2 이 단지는 2,200호가 넘는 주택이 주로 저층으로 깔려 있으므로 일반적인 단지의 규모를 크게 웃돈다. 따라서 하나의 단지라기보다는 소규모 단지들의 집합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흔히 '비커 월 Baker Wall'로 불리는 이 단지는 이십 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재개발사업의 결과물이다. 새롭게 조성된 주거환경은 대담하면서 친근하고, 자유로 우면서 균형 잡히고, 새롭지만 익숙하고, 기념물 같으면서도 소박하다. 무엇보다도 이 단지는 이웃이 서로 어울려 사는 '보금자리'로서 사회성의 측면에서도 성공한 집합주택이다. 이 단지가 성공한 요인은 '사용자의 요구에 대한 대응' '기억과 흔적의 존중' '진솔한 공간적 특성' 같은 내용 들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랠프 어 피부 Ralph Erskine은 영국에서 나고 자라 건축가가 되었지만, 제이차세계대전 전에 스웨덴으로 건너가 그곳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 장로교회 목사이자 사회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러스킨을 퀘이커 교도가 운영하는 학교에 보내 사회주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그런 교육을 바탕으로 그는 건축의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인간애에 근거하여 사용자를 존중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또한 테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주거환경에 대한 지역적 생태적 접근을 강조했다. 러스킨의 작업에는 '도시풍경 townscape'의 주창자 고든 컬론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어서 킨 이 1930년대에 런던 리젠트가 기술대학 Regent Street Polytechnic에서 오 년간 건축을 공부했을 때 컬론은 그의 동료였다. 컬론의 영향 때문인지 러스킨은 건물, 주변 환경, 그리고 풍요로운 경관 이 어우러지는 주거환경을 강조했다. 그는 런던의 '그리니치 밀레니엄 빌리지 Greenwich Millennium Village'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제20장 도판 15 어스킨이 비커 재개발을 위한 책임건축가가 된 것은 1969년이었다. 1968년 가을에 제의를 받은 러스킨은 한 달 동안 진중한 숙고를 거친 후에 일을 맡았다. 당시 비커는 뉴캐슬의 대표적인 슬럼이었다. 산업 혁명기 영국 조선업의 중심지였던 뉴캐슬에는 많은 노동자가 밀집한 연속타자 주택에서 살았다. 1951년에 시행한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뉴캐슬 전체 주택의 33퍼센트가 욕실이 없을 정도로 환경의 수준이 낮았다. 비커는 상황이 더욱더 좋지 않아서, 욕실은 물론 화장실도 없는 주택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주민의 80% 이상이 재개발을 원하면서도 이웃과 헤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스킨이 택한 전략은 '비커 주민을 위한 비커 Yser for the Baker People'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리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주민이 원하는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싹쓸이식 철거 재개발이 성행하던 상황에서는 특별하고도 야심 찬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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