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학

롤링 프로그램

러스킨은 현지에 사무소부터 열었다. 동네 장의사가 사용하던 작은 주택이었다. 건축가 버넌 그레이시 Vernon Gracie가 러스킨을 대신해서 그곳에 상주했다. 그는 2층에 생활하면서 1층 사무소의 문은 항상 열어 두었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했던 주민들은 점점 마음을 열었다. 주민들은 동네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일들을 알려 주었고, 새롭게 들어서는 주거단지의 모습을 궁금해했다. 사무소는 이내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1971년 러스킨은 시범 사업으로 지구의 동남쪽 빈 땅에 '재닛 제곱 Janet Square'를 건설했다. 46호의 주택이 중정을 둘러싸는 구성이었는데, 자원한 가족들이 그곳으로 이주했다. 재닛 제곱'에 대해 주민들은 침침하고 갑갑하다는 등 불만을 털어놓았고, 새로운 환경은 좀 더 밝고 경쾌한 식감을 가지는 '다른 이미지'를 요구했다. 다만 중정 이 만남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에는 만족해했다. 러스킨은 이런 식으로 주민들의 요구를 파악했으며, 그 결과를 취합해 이후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어스킨은 비커 재개발'의 목표를 다섯 가지로 설정했다. 3 첫째는,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건설하되 통합된 integrated 주 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통합된 주거환경이란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 포괄적인 조화를 이루는 환경이라는 의미다. 둘째는,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적 특성을 지키면서 뉴캐슬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도 긴밀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는, 비커 주민들의 결속력과 생활방식을 조금도 손상하지 않고 원하는 한 모두를 재정착시키는 것이다. 넷째는, 남쪽으로 경사진 땅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서 좋은 전망과 충분한 일조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지구 안에 건설되는 일단의 단지 들이 서로 구별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같은 건물들을 계속 반복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단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서 키는 종전의 재개발과는 차별되는 사업 방식인 '롤링 프로그램 robing PROGRAMME'을 제안했다. '롤링 프로그램'이란 '순환 環 재개발'이라고 부르는 개발방식과 유사하다. 즉 지구의 일부를 철거한 후 그곳의 주민들을 인접한 곳으로 이주시키고, 새로운 건물을 지은 후에 주민들을 재정착시키는 방법인데, 이러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서 사업을 완료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기존에 살던 주민들이 흩어질 염려는 없다. 역사상 처음으로 시행한 사람이 어 피부였다. 러스킨은 이 방법을 쓰면서도 한 번에 철거하고 이주시키는 주민의 숫자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시에서는 원래 1,000-1,200세대의 주민을 한꺼번에 이주시킬 계획이었으나 러스킨은 250세대로 줄였다. 현지에서 주민들과 지속해서 접촉한 버넌 그레이시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250세대 단위로 철거와 건설을 진행함으로써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주민들도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또한 나타날 수 있는 획일성의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비커 재개발 단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 넘게 이어지는 거대한 벽체인 '비커 월'이다. 도판 4 '비커 월'은 이십 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과감한 주거용 건축물 중의 하나다. 이 건물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건축가의 창작물이다. 재개발사업의 초기 단계에 대두된 가장 큰 장애물은 지구의 북쪽을 지나는 고속주요도로의 건설이었다. 이 도로 때문에 많은 주택들이 철거되어야 했고 건설 후에는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시에서는 도로와 주거단지 사이에 방음벽을 세우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런 데 러스킨이 계획을 맡으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과감하게 사람이 사는 벽체를 생각했고, 3층에서 8층까지 높이가 변화하는 장대한 '월'을 통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비커 월은 도로의 소음과 겨울이면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차단하는 동시에 그 상징적인 모습으로 단지를 특별한 장소가 되게 했다. 이후 주도로 대신 지하철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지만 비커 월'은 그대로 추진되어 이십 세기 영국 서민주택의 상징물이 되었다. 비커 월의 전면은 개방적이지만 후면은 매우 폐쇄적이다. 남쪽을 향하는 '월'의 전면에는 초록색, 푸른색 등 밝고 경쾌한 색채의 난간과 넓은 개구부가 설치되었다. 반면 후면에는 주택 의 욕실, 부엌, 그리고 계단실을 위한 창만을 내었다. 러스킨은 후면의 무미건조함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색채의 벽돌을 사용해서 리듬감 있게 모자이크 처리했다. 벽체 전체를 예술품으로 다룬 것이다. 도판 5 벽체에 큰 굴곡을 준 것도 같은 이유였다. 이곳에 적용된 '사람이 사는 벽체는 러스킨이 1959년 근대 건축 국제회의에서 발표한 '혹한의 도시 Arctic Town'에 이미 제시된 개념이었다. 이 도시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기 위해 거대한 벽이 도시의 절반을 감싸는 형상으로 계획되었다. 이곳에서도 벽체의 후면은 폐쇄적이지만 남쪽은 넓게 개방되었다. 러스킨은 이 개념을 비커 월에 그대로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