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건축자재가 대형 차량으로 현장에 운반되고, 아직 수도와 전기가 시설되지 않은 곳이라면 공사 기간 동 안 이웃집에서 임시로 빌려 쓰기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토제와 고 유제는 손해를 끼치거나 또는 도움을 구해야 하는 동네 주민들에게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와 같은 것이다. 요즘은 이런저런 말 다 빼고 '안전기원제'를 지내기도 한다. 개토제 나 고유제가 주위 이웃들에게 공사를 알리는 인사라면, 안전기원제는 현장 내부적으로 안전을 기원하고 결속을 다지는 행사로 그 의도가 조금 다르다. 개토제나 고유제가 조금은 법석거리면서 주변 이웃을 불러내어 먹이고 웃고 인사하는 것이라면, 현장 식구와 관계자들끼리 치르는 안전 기원제는 일종의 단합대회' 같은 것이다. 개토제는 공사 중 이웃에게 싫은 소리 덜 듣고 도움 좀 받자고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평생 이웃하고 살 사람들에게 정성 들여서 하는 인사와 같다. 그래서 개토제를 주관하는 사람은 시공회사의 현장 소장이 아니라 집주인이다. 정초식 인터넷에서 '정초식' 定礎式을 검색해보면 '건축공사에서 기초공사를 마쳤을 때, 기초의 모퉁이에 머릿돌을 설치해 공사 착수를 기념하는 서양식 의식'이라고 나온다. 서양식 의식'이라는 말이 다소 낯설다. 자료를 찾아보면, 정초식은 중세 서양에서 교회를 지으면서 돌을 가공하기 시작 한 날을 새기고 미사를 집전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머릿돌'의 출발점이다. 이는 '서양의 정초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새로 짓는 건물마다 머릿돌을 하나씩 박아 넣는데, 이런 행사를 '정초식' 이라 부른다. 전통건축에서 정초식은 주춧돌을 놓을 때 치르는 의식이다. 초석을 튼튼하게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의 좌향 坐向을 결정하는 일이 한옥을 짓는 데는 중요하다. 좌향이라는 말은 어디에 앉아서 어디를 봄' 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건축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집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살 사람이었다. 과거, 정초식은 명망 있는 지관 地觀이 참석하는 중요한 행사였을 것이다. 집을 허허벌판에 짓는다면 중요하겠지만 도심 한가운데 빡빡한 터에 지을 때에는 정초의 의미가 상당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은 정초식을 크게 하지는 않는다. 입주식과 상량식 입주식 立 株式은 기둥을 세울 때 치르는 행사다. 친목은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집 짓는 과정은 건축 전문가가 아닌 집주인에게는 눈에 띄지도 않고 지루하기만 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런 집주인에게 입주식은 본격적으로 집이 서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공사의 시작인 셈이다. 이때부터는 무거운 부재들을 들어 올리는 위험한 일들이 많아서 목수들도 긴장해야 한다. 입주식은 기둥을 세우면서 무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목수들을 격려하는 행사다. 한옥은 '아침에 입주하고 저녁에 상량한다'라는 말 사람 있을 정도로 조립이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요즘에는 입주식을 크게 열지는 않는다. 한옥을 지으면서 치러는 가자 큰 행사는 상량식 上樑式이다. 상량식 치를 때쯤 되면 집주인의 눈에도 집의 골격이 뚜렷이 보이고, 목수들도 위험한 중량의 부재들을 다 조립한 뒤다. 아무런 사고 없이 공사가 여기까지 진행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량식을 연다. 이런 행사들은 모두 다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성격이 강 하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성 들여 집 잘 지어달라는 나름의 '부탁' 이 자, 한 상 차려냈으니 집 잘 지으라는 은근한 압력이기도 하다. 아울러 상량식을 할 때쯤이면 집주인이 아는 사람들을 불러서 집 자랑을 할 때가 된 것이기도 하다. 상량문에는 집의 좌향과 개토 · 입주·상량 날짜와 시각, 집주인의 기원 내용 등을 적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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